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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교차로 라이프] 손숙 "다시 태어나도…연극 배우, 그 말 하나로 족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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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배우 손숙', 나는 그 한 줄로 족해요. 다시 태어나도 연극을 할 거예요."

배우 손숙(79)이 연극 인생 60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올린다. 반백 년 넘게 연극 배우로 살아오며 여전히 정상이 어디인지 모르겠다는 그는 "그게 바로 예술"이라며 "내가 움직이는 한 끝까지 연극을 할 것"이라고 미소 지었다.

지난 3일 서울 서초구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지금까지 작품을 한 후 한 번도 만족한 적은 없었다. 60년을 했든, 50년을 했든 연극은 늘 힘들다"고 말했다.

'연극계 대모'로 불리는 그는 60년간 수많은 작품을 거쳐왔다. '잘자요 엄마', '메리크리스마스, 엄마', '어머니' 등 다시 올리고 싶은 작품도 있지만,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이번 공연에 신작을 택했다. 배삼식 작가가 손숙을 위해 쓴 연극 '토카타'는 그를 다시 1963년 첫 무대의 순간으로 돌려놨다.

"오랫동안 연극을 하다 보니 새 작품을 한다고 설레는 건 없어졌어요. 그런데 이 작품은 대본을 받던 날부터 설레기 시작했죠. 노인이 설렌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에요.(웃음)" 


경남 밀양 출신의 손숙은 어린 시절부터 끼가 다분했다. 6.25 전쟁 직후로 문화를 누릴 수 없었던 시골에서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 있었던 서커스나 국극은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객석에서 심장은 벌렁벌렁 뛰었고, 무대 안의 세상이 너무나 궁금했다. 그렇게 밤잠을 설치던 소녀는 할아버지가 읽던 신문 속 연재소설과 8살 위 언니가 가져온 책을 읽는 재미에 푹 빠지며 '활자 중독'이 됐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친구와 함께 미국 극작가 유진 오닐의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를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책이 아닌 직접 만난 무대의 깊은 감동에 공연이 끝난 후에도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연극에 빠져들었고, 고려대에 입학하자마자 연극 동아리의 러브콜을 받고 연극 '삼각모자' 주인공으로 첫발을 뗐다. 그때의 첫 무대, 첫 대사는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첫 대사가 '여보, 어디 있어요'였어요. 무대에 나왔는데, 객석에서 모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죠. 정말 아무 생각이 안 났고, 빗자루로 계속 바닥만 쓸었어요. 그때 상대 배우가 '여보, 나 여기 있어'라고 외치며 정신이 번쩍 들고 위기를 넘겼죠. 대선배였던 그 배우가 남편(故 김성옥)이에요. 공연이 끝난 후 당시 김갑순 이대 영문과 교수가 대학 1학년 신인을 '여배우 탄생'이라고 연극평을 써줬는데, 그때부터 제가 여배우가 된 줄 알았죠.(웃음)"

'토카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코로나19 시기 관계와 접촉의 단절, 갑작스러운 죽음이 남겼던 충격과 슬픔 그리고 고독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곁을 지키던 늙은 개를 떠나보낸 늙은 여인과 바이러스에 감염돼 위중한 상태에 빠진 중년의 남자 그리고 춤추는 사람까지 세 명이 등장한다. 구체적인 사건보다는 독백이 이어지며 감각에 집중한다. 

그는 "처음엔 모노드라마나 낭독 공연 형식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대본을 볼수록 (의도나 의미를) 찾아내는 게 무궁무진했다. 배우도, 연출도 재미를 느끼고 있는데 관객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대본을 곱씹고 연습할수록 어느새 80여년을 살아온 손숙 자신의 이야기 같다고 했다. "사랑하며 찬란했던 젊은 시절이 지나가고, 남편도 가고 아이들도 다 커서 떠나가면서 쓸쓸하게 혼자 남아 살아가죠. 작품을 보면 내 이야기라고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대사에 향기가 있다"고 극찬한 그는 특히 와닿는 대목 하나를 꼽았다. 늙은 개를 떠나보낸 후 혼자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잠을 자고…혼자 살아가는 이야기를 쭉 늘어놓는 긴 대사의 종점에 있는 문장이다. "마지막에 이 오래된 생을 다 꺼버리고 싶다는 대사가 있어요. 밤에 잠을 잘 때 스위치를 끄듯 말이죠. 그 말이 너무 공감 갔어요."

지난 1월 갑작스럽게 다치면서 생을 더 돌아보게 됐다. 당초 3월 예정했던 '토카타' 공연 연기는 물론 석 달을 꼼짝 없이 누워있어야 했다. 휠체어에 의지하다가 걷기 시작한 것도 두 달 정도밖에 안 된다고 했다. 

"이번에 아프면서 많이 느꼈어요. 그동안 잘 살아왔는지 삶의 과정을 돌아봤죠. 올해는 참 힘들었던 해였어요. 지난해 12월 남편이 세상을 떠났고, 1월에 다치면서 공연이 연기됐고 한꺼번에 많은 일들이 닥쳤어요. 그래도 아파서 꼼짝 못 하고 누워있을 때 '토카타'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어요. 많은 분께 폐를 끼친 만큼 어떻게든 막을 올려야 한다는 책임감, 일어나서 빨리 연극을 해야겠다는 희망이 있었죠."

연극은 그에게 평생의 '위로'이기도 했다. "누구나 인생의 굴곡이 있잖아요. 힘든 현실 속에 있다가 연습하고 무대 위에서 몰두하는 그 시간엔 모든 걸 잊어버리게 돼요. 지금까지 그게 날 살렸던 게 아닌가 싶어요. 연극 배우로 열심히 연극했다는 말 하나면 충분해요. 좋은 작품을 만나서 좋은 연기하는 게 행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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