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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박사]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 유치환 「깃발」 전문

 

바닷가의 깃대에 묶여 움직일 수 없는 ‘깃발’은 저 푸른 해원을 향해 향수를 느끼며 손수건을 흔드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 시는 다양한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깃발은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으로 푸른 해원이라는 이상향을 동경하는 순정이며, 애수와 마음은 이상향에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데 대한 슬픈 마음을 비유하고 있다. 이 시는 푸른 해원에 도달하지 못해 절망하는 감상적 허무와 영원히 이상이 실현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인간 존재의 모순과 고뇌를 보여주고 있다. 푸른 해원과 하얀 깃발이라는 색채의 대조로 주제가 더욱 선명하게 부각된다. 

바닷가에서 아우성치듯 펄럭이는 깃발을 보며 시인은 비유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드러내고 있다. 1연 9행으로 구성된 이 시는 1~3행은 깃발의 역동적 모습, 4~6행은 깃발의 순수한 열정과 애수, 7~9행은 이상향에 도달할 수 없는 슬픔을 표현했다. 이 시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 ‘백로처럼 날개를 편 애수’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은 모두 깃발을 비유한 시어들이며 ‘손수건’을 제외한 모두가 추상적 관념어다. 이 시는 깃발이라는 구체적 사물을 추상적 관념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유치환은 서정주와 함께 <생명파시인>으로 불린다. 생명파란 ‘생명 현실의 솔직한 집중적 표현’을 하고 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유치환의 시는 시적 기교보다 시정신(思想)에 중심을 두고 있다. 청마는 자신의 시를 ‘사고와 직관의 파편’ ‘서정적 철학을 노린 아포리즘’ 등으로 부르고 있다. 

유치환은 초기에는 모더니즘 시에 관심을 뒀으나 곧 모더니즘의 한계를 느끼고 시적 전환을 감행한다. 그의 첫 시집 『청마시초』에서는 천심(天心)으로 향하는 마음과 신념과 의지로 뻗어 가는 시를 썼고, 이후 북만주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시집 『생명의 서』에서 유치환의 특징적 모습인 인간 본연의 생명의식에 대한 근원적 탐구 자세가 나타난다.

이 시 외에 우리가 좋아하는 그의 시로는 ‘행복’, ‘바위’ 등이 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려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에메랄드처럼 아름다운 가을 하늘을 보며 유치환의 시를 생각해 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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