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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발행인의 편지]_언론사의 한참 잘못된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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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한인사회에서는 근간에 거짓보도를 일삼고 여론을 형성하다 법원으로부터 패소판결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바로 지난 아라파호 카운티 법원에서의 주간포커스 김현주발행인과 노우회재단 바비킴 이사장의 소송결과이다.

지난 덴버카운티법원에서 ‘바비킴의 공금횡령이 재판과정에서 증명되었다’라는 주간포커스의 기사가 화두의 쟁점이 된사건이었다.

이 기사는 노우회재단 바비킴 이사장의 래피테이션을 망가뜨리기에 충분했고, 지난 수년간 ‘한인회를 팔아먹은 장본인’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유언비어를 만들어내고 노우회재단을 사유했다는 여론을 만들어냈다.

역시 언론이라는 특수성은 우선적인 자리를 선점하고 일방적으로 열려있는 귀에 독점적인 오피니언과 팩트체크없는 기사가 난무했다.

그로 말미암아 주간포커스는 수백명에 당하는 사람에게 잘못된 정보를 흘려 연명부에 서명을 받아내고 이 연명부는 나중에 서명자들이 모르는 사이에 재판에 증거로까지 도용되고 그 서명자의 이름을 재판에까지 이용하며 이른바 ‘표지갈이’로 증거를 조작한 사실까지 있었다.

위증이야 말로 재판에서는 참으로 밝혀지기 어려운 죄인데 스스럼없이 재판에 위장증거까지 등장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바비킴이사장측은 그 연명부의 서명자들에게 내용증명을 보내며 ‘공금횡령’이 증명이 안된 판결을 받았기때문에 앞으로 이 사건도 수면위로 급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 국가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제1항과 미국 수정헌법 제1조가 그러하다.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다.

사회적인 인식과 통상적인 개념을 넘어 한나라의 기틀이 되는 가장 큰 법인 헌법에까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됐기 때문일까, 언론사에는 보통의 기업이나 비즈니스와는 다른 같잖은 특권의식이 존재해왔다.

그것을 대변하는 대표적인것이  광고상품을 통하지 않고는 이익을 발생시킬 수없는 그야말로 ‘영리 목적의 개인기업’인 언론사가   ‘공공기업’이나 정치 경제를 주름잡는 공적인 단체로 착각하는 행태다.

이상하게도 언론사는 스스로를 ‘사기업’이라 지칭하는 걸 꺼려한다. 개인 자본으로 만들어진 언론사가 지역사회에서 영리목적의 사업체로 공평하고 보편적인 취급을 받는것 보다 공공성을 띤 공적언론기관으로 인정받고픈 욕구도 여기에 기인한다.

대중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바른 여론을 조성하는 언론의 양심과 가치는 그 역할로 보면 충분히 이해되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언급했던 여론조성의 양심적인 에티튜드와 언론의 사명보다는 언론의 우선적이고 일방적이뉴면으로 인한 권력아닌 권력에 도취된 언론사는 앉을 자리 설자리도 모르고 안하무인격으로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암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잠간이다.

언론사주는 단순한 자본가가 아니라 자기가 무슨 사회를 계도하고 여론을 선도하는 오피니언을 리딩한다는 건방진 캐치프레이즈 아래 언론기관의 수장처럼 행세하고 거들먹거린다.

올바른 소식을 철저히 바르게 전달하고 판단은 독자몫으로 남기기 보다는  사회의 최상류층으로 정치적인 포지션을 가진것 마냥  자기의 정체성을 잃버리니까 그밑에서 일하는 기자는 좋은 의미에서는 사명감, 나쁜 의미로는 일종의 특권의식에 도취돼 자신이 언론 사업체에 채용된 노동자라는 걸 의식하지 못하고 오피니언이라는 미명아래 펜을 칼처럼 놀리고 사회의잘못된 여론을 스스럼없이 만들어내 그것이 자기에게 주어진 도덕적 우선권을 착각하며 위선과 위악를 떨며 까불기 시작한다. 이것이 특히 이민언론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특히 콜로라도 처럼 언론 자본이 소규모 지역사회를 장악한 경우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하고, 그들 곁으로 일종의 카르텔과 같은 관계성이 생겨나서 더욱 그 세력을 견고히 한다.

글로벌시대의 소셜네트워크와 포털등의 발달로 구글이나 한국의 네이버같은거 인터넷 외신의 발달로 야기된 언론시장 축소는 독자는 떠나고 광고주만 남은 기형적인 언론시장을 만들어냈다. 특히 이민언론은 기사와 독자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컨텐츠는 없어지고 광고만이 즐비하게 지면을 채우고 있다.

이런 현상이 낳은 대표적인 결과는 신문의 질적 저하, 언론의 저질화다. 늘어난 신문지면은 대부분 광고가 차지하고, 기사는 언론의 사회적 기능보다 사주나 자본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한다. 공정한 컨텐츠보다 사익을 위한 컨텐츠가 주를 이루며 이것이 사회르루지탱하는 진실이라고 언론사 자신이 자기최면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형성된 독점 언론자본이 편중된 컨텐츠를 가지고 지역을 좌지우지하며  사회에 끼치는 가장 큰 폐해는 여론을  사유화한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보도를 이용해 경쟁세력 혹은 눈엣가시 같은 인사를 폄훼하고, 이권과 자본논리에 충실한 여론몰이는 언론 수용자인 독자들의 눈과 귀를 가려 바른 정보를 접할 권리를 빼앗고 우민화 시킨다. 

이런한 독점 언론에게 내적 윤리나 보도의 질적 수준을 요구하는 게 ‘낭만적’ 언행으로 치부될 만큼 언론시장의 윤리가 바닥으로 떨어진지 오래..이를테면 돈이되고 소위 ‘깐부’들의 기사는  

미화되고 맘에 안들고 도덕적가치보다는 경제적가치를 기준으로 판단된 돈안되고 마음에 안드는곳에는 아예 취재조차도 없거나 폄훼적 기사가 작렬한다.

언론자본의 문제는 지역사회에 절박한 문제이자 숙제다. 언론은 여전히 유력한 헤게모니 지배 수단이며, 자본은 어떤 논리든 관철시킬 수 있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독점화된 언론 자본의 발목을 잡고, 바른 정보를 접해야 할 독자의 권리를 되살리며, 언론 노동의 질적 저하를 막는 일이 시급하다. 

급선무는 독자들의 깨어있는 시각이다. 거짓 정보에 미혹되지 않는, 언론 자본의 위험성을 깨우친 현명한 언론 수용자의 시각은 지역사회의 건강한 여론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인터넷 여론을 주도하는 뉴미디어 언론의 연대도 방법이다. 언론시장의 변화 속에서 연대는 전략이고 전술이다. 건강한 기사를 담보한 뉴미디어 언론의 연대는 복합적이고 복잡한 언론시장에서 살아남는 무기이자, 언론 자본의 횡포로부터 독자를 지켜내는 마지노선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여론을 사유화 한 언론자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기자정신을 장착한 언론인들의 저항이다.

작지만 강한 여론을 형성하는 건강한 언론, 바른 소리에 두려움이 없는 언론, 스스로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는 언론, 자본에 굴복하지 않는 언론을 양성하고 지원하는 지역사회의 인식 변화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콜로라도는 아직 어둡다.

특히 바른 여론의 길이 멀기만 한 허울뿐인 지역사회의 눈과 귀가 오염된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정치적 과도기시절 중국의 편협된 여론을 깨운 저 옛날 중국의 개화를 이끈 

청년언론 ‘신중국’처럼 시대의 깨어있는 지성이 그리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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